주사에 자신 없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요즘 개원하는 웬만한 병원에 가면 전가의 보도처럼 수기 치료실이 있습니다. 문제는 디테일한 운용 기획 없이 수기 치료실만 설치하면 뭐든 다 될 것처럼 컨설팅을 하니, 덩그러니 수기 베드만 배치된 채 방치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겁니다.
병원장의 스타일, 상권에 따라 찾아오는 환자 유형, 선발 인원의 능력치를 감안하는 경영 현장 디테일 없이 수학 공식 적용하듯 기계만 배치하는 컨설팅을 남발하니, 정작 수기 치료를 운용해야 할 도수치료사는 현장 적용에 난색을 표하고, 내용을 모르는 인테리어팀은 오픈형으로 설치해야 할 수기 치료 공간을 폐쇄형으로 설계해 놓고 갑니다. 매출이 안 나온다 싶으면 컨설팅은 빠지고, 원장님에게 남는 것은 한때 수기 치료실이었음을 알려 주는 휑한 빈자리와 행잉 사인뿐입니다.
수기 치료실을 세팅하면 대부분의 환자가 자연스럽게 도수로 전환될 것이라는 1+1=2식 컨설팅, 문제를 지적하면 경영 통계 분석에 근거한 솔루션 없이 파견 인원의 정신 교육을 다시 하겠다는 식의 군기 잡기, 임대·분양 업체와 별도 수수료 계약을 맺어 입지가 잘되든 말든 상관없는 무조건 개원하면 좋다고 부추깁니다.
많은 사람이 컨설팅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봅니다. 그럼에도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 베인앤컴퍼니, 딜로이트, 액센츄어 같은 세계 유수의 컨설팅사는 여전히 활약하고, 한국에도 삼일PwC, 삼정KPMG, EY한영 같은 컨설팅사가 있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MBA 학위는 물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컨설턴트가 많습니다. 시니어 컨설턴트가 괜히 CEO로 초빙되는 게 아닙니다. 경영 전문 지식과 산업에 대한 깊이가 있기에,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이나 전환기를 맞은 기업이 그들을 전문 경영인으로 모셔 가는 겁니다.
연 매출 100억대만 올려도 잘 나가는 스타트업 축에 듭니다. 영업이익률이 30%만 나와도 재무적으로 매우 좋은 투자처이고, 흑자 경영이면 너도나도 투자하겠다고 줄을 서고 인재도 여기저기서 쏟아집니다. 상위 20%대 1차 병원도 이 정도 매출 성적은 나옵니다. 산업 경쟁력은 충분한데 왜 이 분야에는 그만한 전문 경영인이 드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컨설팅도 변호사처럼 면허제를 도입하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공부는 점수 차이로 실력이 나뉜다지만 임상은 점수로 실력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해밀의 관리 병원 중 한 곳이었던 B병원에는 각양각색의 도수치료사 8명이 있고, 각자 훌륭하게 환자군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탓에 어깨, 허리, 무릎 등 만성 통증으로 여러 곳에서 도수 치료를 받아 본 터라 도수 치료사의 술기 평가에 있어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환자 입장에서 이 병원 치료사 8명에게 각자 최적의 컨디션인 시간대에 50분씩 모두 치료를 받아 봤습니다. 결론은 모든 치료사의 치료가 앞서 받았던 치료들과 비교해 손색없이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치료 스타일이 제각각 달랐습니다. 치료사들 사이에 누가 더 낫다는 평과 순위가 있었지만, 효능감이 좋았던 치료사는 그 평가와 무관했습니다. 솔직히 서울 중심권이나 이름 난 치료 센터와 왜 이 가격 차이가 큰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수 치료에서 환자의 효능감은 이렇게나 주관적이고, 도수 치료의 실력은 절대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도수치료사 한 명으로 매출이 달라진다는 것은 잘못된 얘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실력 있는 도수치료사가 아니라 비즈니스 감각과 리더십이 있는 실장급 도수치료사가 있으면 매출이 좀 다를 텐데, 가 정확한 희망 사항일 겁니다.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리더십 있는 도수치료사란 결국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고, 진료실 밖에서 알아서 돈을 만들어 줄 실장급 치료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치료사는 웬만한 병원에는 가지 않거나, 컨설팅으로 일찌감치 빠졌거나, 아예 본인 치료 센터를 차린 상황이라는 겁니다.
수익 모델을 도수 치료 중심으로 잡은 병원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비급여 의존도가 높습니다.
둘째, 도수 매출이 병원 경영의 핵심입니다.
셋째, 그런데 좋은 도수치료사의 채용은 어렵습니다.
넷째, 진료실에서 의사가 자신감이 없습니다.
환자가 줄고 매출이 떨어지면 진료실에서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의사는 이미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이런저런 컨설팅도 많이 받아 본 상태입니다. 당장 매출이 급하다 보니 그나마 환자 설득이 수월한 도수 치료 쪽으로 매출 중심을 잡아 둡니다. 블로커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주사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주사에 자신이 없으니 환자에게 설득력 있게 말하지 못하고, 결국 빙빙 돌리다 도수 치료를 권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의사는 이미 경영 주도권을 잃은 상태입니다.
주사에 자신 있으면 주사+α를 함께 제안하며 환자가 완치될 때까지 급여와 비급여, 주사와 재활치료를 번갈아 끌고 가며 매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환자는 환자대로 본인 통증 치료에 가용한 모든 처치를 받는 것 같아 효능감이 높아집니다.
환자의 치료 전 과정이 의사로부터 리드되어야 원장에게 종속되는 단골이 생기고, 경쟁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는 강력한 구환이 됩니다. 치료사도 의사를 쉽게 무시하지 못합니다. 도수치료사가 당장 다 나가도 주사만으로 환자를 끌고 갈 수 있으면 매출 타격은 극복할 수 있고, 치료사는 언젠가 구해집니다. 적어도 내가 주사를 블로커 수준으로 할 수 있어야 블로커를 고용할 수 있는 겁니다.
주방을 모르는 식당은 반드시 망하고, 주사를 모르는 통증 병원도 같은 운명을 맞습니다.
도수만으로 병원 매출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사가 몸에 좋다 안 좋다 학문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주사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개원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야 훨씬 빠르게 매출 개선 솔루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의대 입학은 성적순이지만 성공 개원은 매출순입니다. 높은 매출이 곧 그 병원의 임상 실력을 방증합니다. 큰 수술이 필요한 중증이 아닌 한 대부분의 환자는 빨리 걷고, 뛰고, 안 아프게 앉고 눕게 해 주는 병원을 선호합니다. 제가 지금 허리를 다쳐 꼼짝 못 한다면 스테로이드가 어떻든 당장 낫게만 해 주신다면 뭐든 하겠다고 매달릴 겁니다.
이렇듯, 주사는 중요합니다. 원장님이 스스로 진료실에서 주도권을 회복하고, 매출의 원천이 원장 진료에서 비롯돼야 병원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도수 매출만으로 병원이 반등하는 솔루션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치료사 중심 경영이라 추천하지 않습니다. 진짜 솔루션은 도수가 아니라 원장님의 진료에서 시작해 전 시스템으로 확장되는 구조화된 병원 시스템입니다. 해밀이 B병원에서 한 일도 매출을 만드는 도수 컨설팅이 아니라, 진료-간호-원무-수기치료를 하나의 경영 가능한 시스템으로 묶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은 조직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에 의존하면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 병원도 흔들리고, 시스템을 만들면 사람이 남든 떠나든 병원은 굴러갑니다.
그럼에도 도수 치료 시스템을 잡고 싶다면 다음 여섯 가지를 잘 챙기셔야 합니다.
첫째, 공정한 보상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성과 기반 인센티브 체계 없이 책임감은 생기지 않습니다. 병원에 기여한 만큼 돌아가는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둘째, 시스템이 사람보다 우선입니다. 혼자 잘하는 치료사가 있어도 병원 전체 시스템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업무 매뉴얼, 스터디 자료, 분석 자료를 구조화해 아카이빙하는 것이 병원의 경쟁력입니다.
셋째, 리더십을 나누되 중심은 잡습니다. 도수센터 팀장에게 교육과 피드백 권한을 주되, 환자 유치와 성과 관리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컨설팅사가 이 구조를 설계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컨설팅이 아닙니다.
넷째, 실적은 반드시 가시화합니다. 해밀은 B병원에 전광판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예약률, 재진율, 이탈률 등 실적 낮은 직원은 교체 대상이 되고, 수치 기반 시스템을 항상 보게 해 치료사에게 긴장감과 자기 성장 동기를 줍니다.
다섯째, 수기 치료는 마케팅입니다. 공짜로 해 주는 수기 치료는 손해라는 인식은 잘못됐습니다. 환자가 병원에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마케팅이고, 수기 치료는 상담 유도, 라포 형성, 체류 시간 증가를 위한 마케팅 수단입니다.
여섯째, 인재에 투자합니다. 단순 경력으로 판단하지 말고 포트폴리오, 교육 이력, 업계 평가 등 정량·정성 지표를 근거로 채용해야 합니다. 좋은 직원 한 명이 병원의 분위기와 실적을 좌우합니다. B 병원은 타 병원 대비 30% 이상 높은 급여를 책정해 인재 확보에 투자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립니다. 원장님 외의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백전백패하게 마련이고, 그 자체로 시스템이 없는 겁니다. 지금 원장님의 병원은 원장님 없이도 돌아갑니까? 의료진과 스태프에게 당장 문제가 생겨도 플랜 B, C, D, E, F가 있어 차례대로 대처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