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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메고 창고에서 시작한 경영 관리

이원길의 직설하고 · 이원길 대표 · 2026-09-27

이 병원은 개원 초반 예상 못 할 정도로 환자가 몰리면서 바로 공간 증설을 결정했습니다. 진료실 반대편에서 공사가 계속되던 터라 원내에 별도 사무 공간이 없어, 컨설팅 업무 책상은 창고에 놓였습니다. 첫날 배낭을 메고 출근해 창고에서 바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확장 공사가 이어지다 보니 창고는 공사 먼지로 가득했습니다. 하루만 지나도 책상에 먼지가 앉아 물티슈로 닦고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병원장은 진료에 정신이 없어 밖을 신경 쓸 새가 없었고, 퇴출이 확정된 컨설팅사와의 인수인계도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그날부터 창고에서 조용히 실무를 파악했습니다. 가장 먼저 확장 공사를 총괄하면서, 파편화된 병원 서류 업무의 DB화를 시작했습니다.

제 이력은 기업에서 병원으로, 다시 스타트업으로, 다시 병원으로 이어집니다. 산업군을 넘나들다 보면 각 산업의 특장점을 체득하게 됩니다. 병원은 다른 산업과 달리 트렌드에 둔감하고 변화에 보수적이며 폐쇄적입니다. 반대로 라이선스 업이라 진입장벽이 높고 경기 영향을 덜 받습니다. 기업은 소비자를 상대하는 만큼 트렌디하고 속도가 빠르며 치열하고 경기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대다수 스타트업은 유니크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초기 투자금을 유치하기에 공격적인 사업 전개가 특징입니다. 거의 매일 굵직한 의사 결정이 스탠딩 미팅에서 바로 이뤄지고, 다소 어설픈 완성도라도 일단 소비자에게 전달되도록 실행해 보고, 반응을 바로 반영해 다음 날 튜닝해서 또 내놓습니다.

이런 업무 처리가 가능하려면 소위 꼰대 문화가 없어야 하고, 상호 관계가 수평적이어야 하며, 권한의 범위도 실력 위주로 편성돼야 합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에 속도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예명을 하나 지어 '제임스님'으로 부르는 것도 커뮤니케이션 속도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직급만 남기고 직급에서 풍기는 권위적 요소를 모두 지웁니다. 의사 결정이 슬랙이나 잔디, 플렉스 같은 전용 메신저에서 즉시 이뤄지는 만큼, 소위 세븐 사인(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상무-대표)을 거치는 시간이 파격적으로 줄어듭니다.

업무상 중요한 DB는 클라우드로 공유하고, 그 시트를 여러 팀이 약속된 규칙에 따라 함께 만들어 갑니다. 일반 기업에서 말하는 서류 군기 같은 게 아예 없고, 불필요한 페이퍼를 만드는 시간도 없습니다. 그게 그대로 속도로 이어집니다. 전광판 문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엑셀 명령어와 구글 시트의 문서 간 명령어로 주요 경영 지표가 실시간으로 반영돼 한눈에 보이게 만든 전광판은, 모든 구성원이 경영에 참여하게 하는 효과도 극대화합니다. 투명하게 열린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은 조직 문화를 해치는 루머가 자리할 수 없게 만들고, 루머가 없으니 불필요한 정치도 자랄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병원에 이런 것들이 도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 왔고, 병원 쪽 인연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공유해 왔기에 병원으로 돌아올 때 내심 기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걸 병원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병원에 반영 가능한 요소만 빼내 접목했습니다.

창고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파편화된 사무 업무의 아카이빙과 재분류, 공용 시트화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경영 전광판을 구축하고 행정 업무 자동화 체계를 만들어 갔습니다. 병원 매출에 매우 중요한 진료 표준화와 청구 매뉴얼 자료도 클라우드에 띄워 실시간 최적화와 공유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듯, 운만 좋아서 25년 3월 실매출 10억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해밀은 실제로 경영해 보고, 직접 실무에 적용해 보고, 숫자로 증명되는 결과를 갖고 말합니다. 해밀이 맡은 병원의 숫자는 원장님과 직원이 같은 전광판에서 봅니다.

글쓴이 | 이원길 · (주)해밀컨설팅그룹 대표
정형외과·통증의학과 개원과 병원 경영을 자문합니다. 입지 분석, 개원 준비, 병원 운영 개선에 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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